밤새 뒤척이다 새벽녁에 잠깐 잠이 든 것 같다. 나와서 자면

대개 술김에 내쳐 자는데 비주류파가 되고 부터는 이게 고질이다.

대청봉팀이 5시에 줄발하고 돌아오는 길에 합류해서 희운각으로

가기로 했는데 나가보니 다들 일어나 나와 있다. 비박한 얼굴이라면

부스스 축쳐진 모습들 이었을텐데 다들 잘 잔 것 같다. 아침식사로

입맛 댕기는 백숙죽을 먹고 예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어제 숙박문제로 지나쳐 버렸지만 대피소 난간에는 사진작가들이 줄지어

서서 용아장성에 걸쳐 지나가는 운해의 장관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도 구름사이로 펼쳐진 석양의 짙은 적황색 노을에

감탄의 환성을 보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능선에 올라서니 어제의 그 운해가

밤새 그 자리를 지킨 듯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신 바다를 이루고 있는게

아닌가!

왼쪽으로는 바로 아래 천불동계곡과 그 아래 설악동 그리고 저 멀리

동해바다에 까지 어어지는 끝없는 하얀 솜털들, 다시 오른편에는 가까운

귀때기청봉과 가리봉에 연이은 삼형제봉까지 꽉 채운 백운의 장관이

마치 등산객들을 호위하듯 펼쳐져 있다. 여기에 이른아침 햇살이 따갑다할 정도의

화창한 날씨는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청봉에서 인증샷을 찍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중청대피소에서 베낭을 맡기는

것을 잊고 왔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모두가 등짐에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쾌한 등산이었다면 그 까짓 수고가 대수겠는가. 다시 소청에서 합류한

전대원은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박고 드디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포의 희운각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특히 관절에 무리를 주는 코스다. 우리 산악인들에게 직업병처럼

찾아오는 관절염은 본인이 가진 능력보다 지나친 관절운동 때문이다.

관절에 과부하를 피하고 과체중, 과운동, 그리고 약해지는 관절근육에

평소 신경을 써야만 한다. 우리산악부에서도 경고장을 받은 분들이 있어서

걱정이 된다.

희운각을 무사히 통과하고 이제 긴긴 천불동계곡으로 접근한다. 자칫

지루해 질수 있고 한편으로는 등반이 끝나간다는 안일한 생각에 의외로

안전사고가 잦은 코스다. 폭포와 담도 많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치자면

내설악이 구곡담이라면 외설악은 역시 천불동이다. 특히 이 쪽은 화채능에서

만들어진 수 많은 폭포들이 어우러져 그 경치가 설악을 대표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덧 양폭을 지나는데 앞서던 대원의 전갈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올라오는 본대와의 통화에서 예상보다 빨리 설악골에

도착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 팀이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내려 갔다는 것이다. 우리도 서둘러 하산하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설악골에 도착하니 본대의 선발대가 이미

도착해 있고 아직 교수님 일행은 미도착이다. 정확한 맞춤등반이지 않은가!

이로써 2018 추모산행 설악산종주 등반팀은 그 임무를 다했다.

수고들 했어요^^

ps 매년 이맘때면 장마전선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애를 태우곤 했는데

금년엔 날씨가 받쳐 주었다. 더욱이 고 이정남형님의 가족분께서

이 행사에 참여하여 더욱 그 의미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