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50km 무박행군훈련
한 해를 넘기는 늦가을 끝자락을 어디서 잡을까 생각하던차에 정기산행이 일요일로 잡혔으니
같이 가자고 이재정회장이 전화를 주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아주 아주 오랜만에
죽다 살아난 등반얘기가 펼쳐질 기막힌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흔쾌히 참석 싸인을 보낸 것이다.
이번 연간계획에 없던 정기산행은 재학생들의 무박50km행군훈련의 격려차원이었단다.
'불수사도북'코스라는 나에겐 낯선 이름의 5개산 종주등반을
무박으로내리꽂는 체력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암산 주변에서 맴돌다 마지막 피치에서 만나 함께 하산하려는 계획이다.
오랜만의 일요산행이라 이 회장이 이십여 군데에 전화를 돌렸다는데 참가자가
이세연형님을 위시하여 영배, 명도 그리고 얼마전 모친상을 당한 오경섭(82) 그렇게 6명이다.
일요일은 교회 등 개인적인 행사들이
많은것 같다고하니 앞으로도 일요산행이 쉽지 않을듯 싶다.
이북5도청을 지나 금선사 옆을 끼고 비봉을 향해 걷는 동안 이런 산날씨 정말 오랜만이라며 등산을 즐긴다.
바람없는 늦가을 양지바른 오르막길을 큰 부담없이 두런 두런 일상 얘기 나누며 걷는 산행길은
그럭저럭 해피하기만 하다.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까지 2km. 거기서 상황을 체크해서
더 전진하든가 아니면 YB를 기다리자는 계획. 사모바위 도착 후 재학생 위치를 확인한 결과
대남문까지 전진하기에는 우리측의 능력, 즉 체력이 의문이고 그렇다고 여기서 기다리기에는
만날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고민이 되는 상황. 그래서 의견일치가 된 일정은 우리끼리 점심을 먹은 후
이자리에서 오수를 즐길 사람과 재학생을 만나러 가는 사람으로 나누기로 했다.
세연이형은 남는 쪽에 영배,명도는 대남문까지 가기로 한다. 나는 대남문팀으로
이회장은 세연형 보호차원으로 남기로 역할분담을 했다.
대남문을 기기 위해선 승가봉과 문수봉을 지나야하는데 능선길에 솟은 문수봉이 만만치 않다.
부지런히 선두를 지키며 걸어 보는데 그 이유는 다른 일행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올드보이의 계산에서다.그렇게 힘겹게 대남문까지 1.7km를 걸어 왔는데 재학생들은
아직도 대동문에 도착도 못한 상태. 백운대 정상을 갔다오느라 일정이 더 지체된 탓이라 한다.
현재시간, 오후 4시! 뭔가 감이 온다. 요즘 하루해가 5시면 컴컴해지기 시작하는데 행동에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이
퍼득 뇌리를 스친다. 그래서 영배는 재학생을 기다려 그들의 체력상태에 따라 하산을 결정하자는 플랜비를
세워 놓고 명도와 나는 왔던데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하산길이었고
그렇게 랜턴없는 하산이 시작됐던 것이다.
다시 사모바위에서 재회한 일행은 랜턴 준비가 안된 나와 세연형이 먼저 내려가기로 한다.
코스는 승가사 계곡으로 잡았다. 내려와서 지도를 보니 승가사길도 2km
그리고 비봉을 거쳐 우리가 올라왔던 길도 2km. 그런데 승가사계곡으로 잡은 이유는
느낌이 아무래도 짧다는 세연이형의 생각이였던것 같다.
아무렴 우리는 그렇게 고생길로 들어섰다
계곡이 깊어짐에 따라 어둠도 깊어진다.그러나 사위가 깜깜해도 우리는 전진한다.
한걸음 한걸음씩 떼어놓는 발 밑 아주 작은 돌맹이, 나무 한 뿌리에 단 한차례만이라도 걸리기만하면
구천길 낭떠러지가 바로 그곳인 이런 상황이 올 줄이야. 내 생전 어느 젊었던 날 수차례 있던
야간산행길에서도 분명 이런 상황이 있었을터이니 오 나의 두뇌여 제발 그때 그 기억을 꺼내서
실수없이 이 상황을 돌파할수 있도록 600여 모든 근육에게 긴급타전하라! 속으로 끝없이 끝없이
그렇게 명령하며 내려온다. 결국 이렇게 응급실 신세를 면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어제밤 나의 두뇌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한게 틀림없다. 저 밑으로 희미한 전등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여기는 뒤풀이 자리. 재학생 5명과 이회장 일행이 불광동으로 완벽종주의 테이프를 끊었고
영배.명도 콤비가 비봉코스로 완주한 후 불광동 고깃집에서 합세
뒷풀이를 제대로 했다.
그들은 인생길 거의 넘은 경험과 노련함을 부러워하고 우리는그들의 젊음을 부러워하며
하나된 산악회 식구임을 서로 축하해준다.
(에필로그)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 몸 컨디션이 날아갈 듯 가볍다. 산에서 얻은 정기가 온 몸을 감싸주는 느낌?
근육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신호? 그래 어제밤 수고했어! 자찬의 향연소리가 절로 난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