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추모산행...흘림골 답사기
거의 반세기를 산과 함께 어울려 지내온 노땅산꾼들이 우연이라는
인생의 한 고갯길에서 의기투합, 이번 추모산행에 워킹팀을 꾸려
보기로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늘 그렇게들 다니는 행선길에 그저 이 한몸 빌붙어서
설악을 품어보는 호강 한번 누리고 싶어 간청하다시피 해
잡은 산행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그러니 멤버들이 노땅들로 치우쳐
평균연령이 칠십대를 훌쩍 넘는다. 워킹능력이 엇비슷하니 순조로운 운행이
기대되기는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전선이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순조로운 산행을 위협한다.
아마 사오년전 쯤 됐지싶은데 추모산행 일정이 7월초로 정해 내려오는 관행을
6월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싶어 나라에서도 호국영령의 달로 정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6월초로 변경하면 어떨지 두루두루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회원들의 생각이 많이 완고했던걸로 기억된다. 이런때는 진보적 자세도 좋으련만
매년 장마 걱정도 덜텐데.
새벽같이 일어나 약속장소로 가기위해 지하철2호선을 타는 순간 객실에 꽉 들어찬 승객
그것도 분위기가 무겁고 심각해 보이기까지 해 설악냄새를 맡으러 가겠다고 들떠
서둘던 감정이 갑자기 싸~해진다. 아니 이시간에 그것도 토요일인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갑자기 딴 세상에서 온 느낌 이해되시나요?
오늘의 산행은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넘어가는 4시간 코스. 계곡이 얼마나 깊으면
날씨가 늘 흐린것 같아 흘림골이라 부르게된 이름이라는데 한계령과 점봉산 사이의 깊고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곳. 더욱이 2015년 큰수해로 7년간이나
통제되었다가 개방된지 2년 밖에 안된 곳이기에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아 자연경관이 더욱 아름다운 산꾼들의 필수 답사코스다.
설악산 국립공원사무실에 전화 확인한 결과 일기예보상 입산허가는 현장에서 가능하다고 하여
한계령을 지나 흘림골탐방로 입구까지 달려 도착한 시간이11시 30분.
간단한 입산수속을 마치고 산행이 시작됐다.
기상조건은 폭우처럼 쏟아지던 심각한 상황은 벗어나 오락가락 빗줄기가 보이는 정도.
초입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등산로에 바짝 긴장하며 깔닥고개길 워킹이 시작됐다. 커리어로 보면
이젠 좀 걷는게 쉬워질만도 한데 걷는다는 것은 이렇듯 늘 고행. 얼마나 자신을 추수르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금의 이 고행길을 이겨낼수 있을까 체력에 문제는 없는걸까
그 동안 몸 관리를 소홀히 한건 아닌가 등등 온갖 잡념들이 머리를 어지렵히다가 어느틈에
무념무상의 저 흐르는 수풀안개처럼 스쳐 걷는 동안 어느덧 앞 대원이 '10분간 휴식'소리에
제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아! 이 아름다운 순간을.. 위하여!.
등선대까지 오르는 동안 여심폭포도 지나고 병풍같은 기암괴석도 지나고 이름모를
못(沼)도 지나쳐 왔지만 이 모두를 온 몸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힘겹게 등선대에 올라서니
"귀때기청봉.. 끝청..대청봉..그 너머 동해바다..남설악의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하면서 읊어대며
고생끝에 즐거움을 노래해야 하건만 현실은 온통 안개바다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그건 다음을 기약하자.
설악산도 식후경! 이 시간은 하루 일정의 하이라이트. 체력보강이 급할수록 더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깊은 산중에 인공시설물로 널찍이만들어 놓은 쉼터가 안성마춤으로 기다리고 있다. 호텔급 참치김밥..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샀으니 틀린 말은 아니고..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에 라면 만들어
홍어무침 안주에 반주 완벽한 조합이다. 캬! 그러나 술 퇴장 명령이 내려진다. 안전한 산행을 위한
노등산객들의 규칙이 적용된것이다. 그 만큼 흘림골 워킹이 만만치 않다는 반증.
그 대신 스테레오 시스템으로 은은히 들려오는 김연자의 어깨춤 노래가 산중에 울려 퍼진다.
깊은 계곡으로 유명한 주전골의 흐르는 물소리가 이곳 흘림골까지 어서 들 오라는 듯 우렁차게 들리며
등산객을 부른다. 엽전과 관련된 이름 주전골은 보통 오색약수에서 시작하는 완만한 탐방로를 이용하지만
그 원류인 한계령에서 부터 내려오는 깊은 계곡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한가로이 내려 걷는
워킹의 매력은 흔치않은 설악의 일품 답사코스임을 증명한다.
하강길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그렇게 오색약수가 가까워지며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어느덧 오늘의 산행이 마무리 된다.
44년만에 다시 찾게된 북알프스원정단의 대장 역할을 수행할 체력을 확인시켜준 이세연대원,
늘 생각과 자세의 좌표 만큼은 가운데 중심에 놓겠다며 좌충우돌 회초리 드는 유세현대원,
학창시절 놓쳤던 우등생의 명예를 산악회에서 되찾은 김영배대원..
이들은 중앙대산악회의 표상이다. 모두들 수고 하셨수! <끝>
